매디슨 한인천주교회가 걸어온 길: " 영원을 향하는 길목에서..."
1차 집필: 2004. 2. 1. 홍진국 클레멘스
수정 및 보충: 2004. 3. 7. 김희삼 아우구스티노
보충: 2013. 12. 20. 조성익 토마스 모어
공식적으로 우리 매디슨 한인 공동체의 생일은 1985년 9월 2일 입니다. 그 날, 강정렬 아오스딩 형제님 댁에서 시카고에 계시던 제찬규 시메온 신부님을 모시고 약 40명의 교우들이 모여 미사를 드린 것이 우리 공동체의 출발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우리 공동체가 30주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까지 여덟 분의 신부님께서 짧게는 석 달, 길게는 여섯 해 동안 우리 공동체를 맡아 주셨습니다.
굳이 세대 구분을 하자면, 첫 미사후부터 1989년 여름까지 초대 신부님으로 계셨던 김정웅 베드로 신부님과, 그 뒤를 이어 최초의 전임 신부님으로서, 그 전까지 격주로 보던 미사를 매주 볼 수 있게 해주신 최홍길 레오 신부님께서 계시던 1990년 겨울까지를 1세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회 소속이셨던 김 베드로 신부님께서는 마켓대학 학생으로 계시면서 매디슨에는 손님 신부님 자격으로 격주로 오셔서 미사를 해주셨습니다. 첫 출발당시 약 40명 안팎의 교우들로 시작된 작은 공동체였지만, 사목회의, 주일학교, 성가대, 기도모임 등 공동체로서의 기본적인 구조는 다 갖추고 있었고, 정기적인 피정과 수련회, 주간 성경공부반, 예비자 교리반 등의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초기 교우들의 열성과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 공동체가 이만큼 성장 할 수 있게 된 튼튼한 기초가 세워졌던 셈입니다. 1988년 여름에는, 서울
대교구의 김희선 요셉 신부님께서 UW-Madison 사회복지학과에 Honorary scholar 로 초빙되어 매디슨에 오셨습니다. 김 요셉 신부님께서는 매디슨에 계시는 동안 손님신부님으로서, 김 베드로 신부님께서 오시지 않는 주일의 미사를 집전해 주셨고, 그래서 그 때부터1989년 여름까지 1년 동안은 격주로 드리던 미사를 매주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9년 7월 대구 대교구의 최홍길 레오 신부님께서 김 베드로 신부님의 뒤를 이어 매디슨의 주임 신부님으로 오시면서 매디슨 한인천주교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최 레오 신부님께서는 밀워키와 매디슨 본당 사목을 위해 해외교포사목국에서 정식으로 파견되어 오셨으며, 밀워키에서 매주 매디슨을 오가시며 미사와 신앙지도를 해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매디슨 공동체는 전적으로 사목을 전담하시는 신부님을 모시고 지속적으로 매주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 레오신부님께서 계셨던 일년 반동안은, 전례형식이나, 규범적이며 구조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하신 신부님의 지도에 따라 많은 신심 기도 모임들이 새로 조직되거나 강화되었으며, 꾸르실료 교육 참석과 사목 연수 등과 같은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이 활발했던 시기였습니다. 한편, 김정웅 신부님께서는 1989년에 매디슨과 밀워키 한인 공동체의 사목을 최레오 신부님께 이임 하신후, 공부를 마치신 다음 1990년 여름에 한국으로 귀국하셨습니다.
최 레오 신부님께서 귀국하신 1990년 12월부터 1992년 여름까지 약 1년반 동안은 매디슨 공동체에 신부님이 안 계신 공백기였습니다. 주임 신부님이 계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우들은 Saint Paul 의 미국 미사에 모여서 함께 미사 참례를 하기도 하고, 한동안은 매디슨 교구의 미국 신부님을 모시고 따로 영어 미사를 드리기도 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1992년 5월부터 7월까지는 로마에서 공부하시던 최 요셉 신부님께서 매디슨에 체류하시면서 공동체를 위해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 8월에 수원교구에서 박승룡 클레멘스 신부님께서 유학생 신부님(교육심리학 전공)으로서 오심으로써 매디슨 공동체는 다시 주임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박 클레멘스 신부님께서 계시던 약 6년간의 기간을 매디슨 공동체의 2세대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매디슨 공동체가 독립적인 본당 공동체로 발돋움하고 질적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룬 시기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밀워키 본당과 연계되어 있던 예산이 독자적으로 편성됨에 따라 재정 규모가 많이 커졌고, 한때 30 가구 정도까지 떨어졌던 교우숫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거의 7-80 가구 정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박 클레멘스 신부님께서는 매디슨에 상주하시면서 매디슨 공동체의 사목을 담당하신 최초의 신부님이셨습니다. 박 클레멘스 신부님께서는 생활 속의 신앙을 강조하시면서 사목활동도 교우들의 일상생활과 잘 조화가 되는 방향으로 운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청년부 성경공부나 남녀 레지오 마리에와 같은 신심 모임과 더불어 교우 테니스 모임, 볼링 모임과 같은 친목 운동 모임들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고 김남수 주교님께서 두 차례에 걸쳐 매디슨 공동체를 다녀 가셨습니다.
1998년 박현민 베드로 신부님께서 수원교구에서 박 클레멘스 신부님의 후임으로 매디슨에 오시면서, 매디슨 공동체의 3세대가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동안의 성장 시기를 거쳐 매디슨 공동체가 좀 더 성숙해지고 안정화되는 시기라고 봅니다. 사목회의를 포함한 공동체 내의 여러 모임들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고, 그 단체들의 활동 내역이나 수련회, 피정을 포함한 각종 공동체의 행사들의 내용이 보다 충실해지고 강화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안정화의 배경에는 “항상 공부하는 신자”를 강조하시면서, 각종 모임이나 행사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도하는 데 애써주신 박 베드로 신부님의 역할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박 베드로 신부님은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생으로서 매디슨과 시카고를 왕복하시며 공부하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소공동체 모임의 활성화에 힘쓰셨고, 교우들의 자발적인 소모임에도 늘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바자회, 여름캠프, 추수감사절행사, 성탄행사 등이 많은 교우들의 호응과 봉사 속에 연중행사로서 자리잡았고, 이 시기에 교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박 베드로 신부님은 박사학위 취득 후 귀국하셔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으로 일하게 되셨습니다.
수원교구에서 매디슨에 후임사제를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매디슨 공동체는 진로가 잠시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밀워키 본당의 주임신부로 계신 표신천 임마누엘 신부님께서 매디슨 사목을 병행하시게 됨으로써 한인미사와 한인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주교구에서 미주사목을 위해 파견되신 표 임마누엘 신부님께서는 2003년 3월 23일 사순 제 3주 미사를 집전하신 것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매주 밀워키에서 매디슨에 오셔서 공동체 사목을 해주시면서, 매디슨 공동체의 제 4세대를 여셨습니다.
비록 매디슨에 상주하시는 사제를 모시지는 못했지만 표 임마누엘 신부님의 정성과 노력으로 매디슨 공동체는 여름캠프, 추수감사미사, 야외미사, 판공성사, 성탄미사 및 파티, 신년미사 및 윷놀이, 촛불 예식, 재의 예식 등 공동체 활동과 전례면에서 형식과 함께 내실을 갖추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표 임마누엘 신부님께서는 대림과 사순시기에는 기도와 묵상과 실천을 위한 다이어리를 손수 만들어 나누어주시는 등, 안정되고 성숙된 공동체에 합당한 교우들의 신앙적 성숙을 위해 힘쓰시고 계십니다. 또한 대림/성탄 합동공연 등을 통해 Saint Paul의 미국인 공동체와 우리 공동체 간의 유대가 강화된 것도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2005년 말부터 2013년까지는 밀워키에 있는 마켓대학 철학과 대학원에 계시던 박상훈 알렉산더 신부님께서 위스콘신 매디슨 주립대학으로 옮겨오시면서 공동체 사목을 해 주셨습니다. 박상훈 신부님은 바른 신앙인으로서의 삶은 끊임없는 내적인 성찰과 기도,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 세계에 대한 관심과 생활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성숙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때로는 두서없이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재미없는 농담을던지시기도 하셨지만,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세계의 모순에 대해서, 그리고 그에 대한 신앙인으로서의 태도에 대해서 항상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바르게 사는 것이 신앙인으로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다양한 삶의 주제에 관한 유쾌하고 열정적인 대화와 논쟁을 통해서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교리모임과 성서모임과 같은 다양한 공동체 모임 안에서 만드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유학생이 대부분인 매디슨 한인 사회에서, 매디슨 가톨릭 공동체는 이곳 매디슨을 거쳐가는 교우들이 삶의 지류를 타고 흘러 왔다가 다시 큰 강물로 흘러나가기까지 머무르는 호수같은 역할을 해 왔다고 하겠습니다. 그간 매디슨 공동체를 거쳐간 교우들의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7-80 여가구 정도는 매디슨 공동체의 주 구성원으로서 그 호수를 지켜왔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간 많은 교우들도 공동 미사를 포함한 크고 작은 모임들을 통해 이곳에서 맺은 인연들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지난 세월 동안 맑은 날도 있었고, 간혹 흐리고 우울한 날도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우리 공동체를 지켜주며 있게 한 원동력은 우리 교우들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교우들간의 형제애였습니다. 일년 동안 매디슨을 방문하셨던 김 요셉 신부님께서는, 김 베드로 신부님 귀국기념문집 <영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에서 당신께서 느끼셨던 매디슨 공동체의 특성을, 첫째, 모든 교우들이 공동체에 적극적인 교회; 둘째,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애가 흐르는 교회; 셋째, 분열과 갈등이 없는 교회; 넷째, 검소한 교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면한 교회, 이렇게 다섯 가지로 얘기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점들이 우리 공동체의 특성으로 그대로 남아서 매디슨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일 미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모든 교우들이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모든 일들을 알아서 맡아 해내고, 저마다 바쁜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교우들간에 기쁜 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볼 때, 위에서 열거한 매디슨 공동체의 성격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제 곧 창립 30주년을 바라보는 지금, 초창기 매디슨 공동체의 아름답고 열정적인 모습을 오늘날 우리 공동체에서 똑같이 발견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매디슨 공동체의 영원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축복일 것입니다. 김정웅 베드로 신부님께서 기념문집에 남기신 말씀은 매디슨 한인천주교회를 아름답게 지키고 발전시키고 물려주는 것이 축복 받은 우리의 소명임을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이제 4년의 문턱을 넘어 영원을 향하는 길목에서, 엮음에서 오는 환희를, 엮음에서 오는 고통을, 엮음에서 오는 손해를 서로 엮어 영원을
엮길 바랍니다.”
1차 집필: 2004. 2. 1. 홍진국 클레멘스
수정 및 보충: 2004. 3. 7. 김희삼 아우구스티노
보충: 2013. 12. 20. 조성익 토마스 모어
공식적으로 우리 매디슨 한인 공동체의 생일은 1985년 9월 2일 입니다. 그 날, 강정렬 아오스딩 형제님 댁에서 시카고에 계시던 제찬규 시메온 신부님을 모시고 약 40명의 교우들이 모여 미사를 드린 것이 우리 공동체의 출발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우리 공동체가 30주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까지 여덟 분의 신부님께서 짧게는 석 달, 길게는 여섯 해 동안 우리 공동체를 맡아 주셨습니다.
굳이 세대 구분을 하자면, 첫 미사후부터 1989년 여름까지 초대 신부님으로 계셨던 김정웅 베드로 신부님과, 그 뒤를 이어 최초의 전임 신부님으로서, 그 전까지 격주로 보던 미사를 매주 볼 수 있게 해주신 최홍길 레오 신부님께서 계시던 1990년 겨울까지를 1세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회 소속이셨던 김 베드로 신부님께서는 마켓대학 학생으로 계시면서 매디슨에는 손님 신부님 자격으로 격주로 오셔서 미사를 해주셨습니다. 첫 출발당시 약 40명 안팎의 교우들로 시작된 작은 공동체였지만, 사목회의, 주일학교, 성가대, 기도모임 등 공동체로서의 기본적인 구조는 다 갖추고 있었고, 정기적인 피정과 수련회, 주간 성경공부반, 예비자 교리반 등의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초기 교우들의 열성과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 공동체가 이만큼 성장 할 수 있게 된 튼튼한 기초가 세워졌던 셈입니다. 1988년 여름에는, 서울
대교구의 김희선 요셉 신부님께서 UW-Madison 사회복지학과에 Honorary scholar 로 초빙되어 매디슨에 오셨습니다. 김 요셉 신부님께서는 매디슨에 계시는 동안 손님신부님으로서, 김 베드로 신부님께서 오시지 않는 주일의 미사를 집전해 주셨고, 그래서 그 때부터1989년 여름까지 1년 동안은 격주로 드리던 미사를 매주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9년 7월 대구 대교구의 최홍길 레오 신부님께서 김 베드로 신부님의 뒤를 이어 매디슨의 주임 신부님으로 오시면서 매디슨 한인천주교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최 레오 신부님께서는 밀워키와 매디슨 본당 사목을 위해 해외교포사목국에서 정식으로 파견되어 오셨으며, 밀워키에서 매주 매디슨을 오가시며 미사와 신앙지도를 해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매디슨 공동체는 전적으로 사목을 전담하시는 신부님을 모시고 지속적으로 매주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 레오신부님께서 계셨던 일년 반동안은, 전례형식이나, 규범적이며 구조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하신 신부님의 지도에 따라 많은 신심 기도 모임들이 새로 조직되거나 강화되었으며, 꾸르실료 교육 참석과 사목 연수 등과 같은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이 활발했던 시기였습니다. 한편, 김정웅 신부님께서는 1989년에 매디슨과 밀워키 한인 공동체의 사목을 최레오 신부님께 이임 하신후, 공부를 마치신 다음 1990년 여름에 한국으로 귀국하셨습니다.
최 레오 신부님께서 귀국하신 1990년 12월부터 1992년 여름까지 약 1년반 동안은 매디슨 공동체에 신부님이 안 계신 공백기였습니다. 주임 신부님이 계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우들은 Saint Paul 의 미국 미사에 모여서 함께 미사 참례를 하기도 하고, 한동안은 매디슨 교구의 미국 신부님을 모시고 따로 영어 미사를 드리기도 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1992년 5월부터 7월까지는 로마에서 공부하시던 최 요셉 신부님께서 매디슨에 체류하시면서 공동체를 위해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 8월에 수원교구에서 박승룡 클레멘스 신부님께서 유학생 신부님(교육심리학 전공)으로서 오심으로써 매디슨 공동체는 다시 주임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박 클레멘스 신부님께서 계시던 약 6년간의 기간을 매디슨 공동체의 2세대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매디슨 공동체가 독립적인 본당 공동체로 발돋움하고 질적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룬 시기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밀워키 본당과 연계되어 있던 예산이 독자적으로 편성됨에 따라 재정 규모가 많이 커졌고, 한때 30 가구 정도까지 떨어졌던 교우숫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거의 7-80 가구 정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박 클레멘스 신부님께서는 매디슨에 상주하시면서 매디슨 공동체의 사목을 담당하신 최초의 신부님이셨습니다. 박 클레멘스 신부님께서는 생활 속의 신앙을 강조하시면서 사목활동도 교우들의 일상생활과 잘 조화가 되는 방향으로 운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청년부 성경공부나 남녀 레지오 마리에와 같은 신심 모임과 더불어 교우 테니스 모임, 볼링 모임과 같은 친목 운동 모임들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고 김남수 주교님께서 두 차례에 걸쳐 매디슨 공동체를 다녀 가셨습니다.
1998년 박현민 베드로 신부님께서 수원교구에서 박 클레멘스 신부님의 후임으로 매디슨에 오시면서, 매디슨 공동체의 3세대가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동안의 성장 시기를 거쳐 매디슨 공동체가 좀 더 성숙해지고 안정화되는 시기라고 봅니다. 사목회의를 포함한 공동체 내의 여러 모임들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고, 그 단체들의 활동 내역이나 수련회, 피정을 포함한 각종 공동체의 행사들의 내용이 보다 충실해지고 강화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안정화의 배경에는 “항상 공부하는 신자”를 강조하시면서, 각종 모임이나 행사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도하는 데 애써주신 박 베드로 신부님의 역할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박 베드로 신부님은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생으로서 매디슨과 시카고를 왕복하시며 공부하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소공동체 모임의 활성화에 힘쓰셨고, 교우들의 자발적인 소모임에도 늘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바자회, 여름캠프, 추수감사절행사, 성탄행사 등이 많은 교우들의 호응과 봉사 속에 연중행사로서 자리잡았고, 이 시기에 교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박 베드로 신부님은 박사학위 취득 후 귀국하셔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으로 일하게 되셨습니다.
수원교구에서 매디슨에 후임사제를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매디슨 공동체는 진로가 잠시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밀워키 본당의 주임신부로 계신 표신천 임마누엘 신부님께서 매디슨 사목을 병행하시게 됨으로써 한인미사와 한인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주교구에서 미주사목을 위해 파견되신 표 임마누엘 신부님께서는 2003년 3월 23일 사순 제 3주 미사를 집전하신 것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매주 밀워키에서 매디슨에 오셔서 공동체 사목을 해주시면서, 매디슨 공동체의 제 4세대를 여셨습니다.
비록 매디슨에 상주하시는 사제를 모시지는 못했지만 표 임마누엘 신부님의 정성과 노력으로 매디슨 공동체는 여름캠프, 추수감사미사, 야외미사, 판공성사, 성탄미사 및 파티, 신년미사 및 윷놀이, 촛불 예식, 재의 예식 등 공동체 활동과 전례면에서 형식과 함께 내실을 갖추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표 임마누엘 신부님께서는 대림과 사순시기에는 기도와 묵상과 실천을 위한 다이어리를 손수 만들어 나누어주시는 등, 안정되고 성숙된 공동체에 합당한 교우들의 신앙적 성숙을 위해 힘쓰시고 계십니다. 또한 대림/성탄 합동공연 등을 통해 Saint Paul의 미국인 공동체와 우리 공동체 간의 유대가 강화된 것도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2005년 말부터 2013년까지는 밀워키에 있는 마켓대학 철학과 대학원에 계시던 박상훈 알렉산더 신부님께서 위스콘신 매디슨 주립대학으로 옮겨오시면서 공동체 사목을 해 주셨습니다. 박상훈 신부님은 바른 신앙인으로서의 삶은 끊임없는 내적인 성찰과 기도,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 세계에 대한 관심과 생활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성숙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때로는 두서없이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재미없는 농담을던지시기도 하셨지만,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세계의 모순에 대해서, 그리고 그에 대한 신앙인으로서의 태도에 대해서 항상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바르게 사는 것이 신앙인으로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다양한 삶의 주제에 관한 유쾌하고 열정적인 대화와 논쟁을 통해서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교리모임과 성서모임과 같은 다양한 공동체 모임 안에서 만드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유학생이 대부분인 매디슨 한인 사회에서, 매디슨 가톨릭 공동체는 이곳 매디슨을 거쳐가는 교우들이 삶의 지류를 타고 흘러 왔다가 다시 큰 강물로 흘러나가기까지 머무르는 호수같은 역할을 해 왔다고 하겠습니다. 그간 매디슨 공동체를 거쳐간 교우들의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7-80 여가구 정도는 매디슨 공동체의 주 구성원으로서 그 호수를 지켜왔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간 많은 교우들도 공동 미사를 포함한 크고 작은 모임들을 통해 이곳에서 맺은 인연들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지난 세월 동안 맑은 날도 있었고, 간혹 흐리고 우울한 날도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우리 공동체를 지켜주며 있게 한 원동력은 우리 교우들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교우들간의 형제애였습니다. 일년 동안 매디슨을 방문하셨던 김 요셉 신부님께서는, 김 베드로 신부님 귀국기념문집 <영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에서 당신께서 느끼셨던 매디슨 공동체의 특성을, 첫째, 모든 교우들이 공동체에 적극적인 교회; 둘째,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애가 흐르는 교회; 셋째, 분열과 갈등이 없는 교회; 넷째, 검소한 교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면한 교회, 이렇게 다섯 가지로 얘기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점들이 우리 공동체의 특성으로 그대로 남아서 매디슨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일 미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모든 교우들이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모든 일들을 알아서 맡아 해내고, 저마다 바쁜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교우들간에 기쁜 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볼 때, 위에서 열거한 매디슨 공동체의 성격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제 곧 창립 30주년을 바라보는 지금, 초창기 매디슨 공동체의 아름답고 열정적인 모습을 오늘날 우리 공동체에서 똑같이 발견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매디슨 공동체의 영원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축복일 것입니다. 김정웅 베드로 신부님께서 기념문집에 남기신 말씀은 매디슨 한인천주교회를 아름답게 지키고 발전시키고 물려주는 것이 축복 받은 우리의 소명임을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이제 4년의 문턱을 넘어 영원을 향하는 길목에서, 엮음에서 오는 환희를, 엮음에서 오는 고통을, 엮음에서 오는 손해를 서로 엮어 영원을
엮길 바랍니다.”